다니엘서 11장
역사는 하나님의 이야기이다. 11장은 실제적인 역사 안의 기간 중 400년에 해당된다. 적그리스도의 기간까지 합하면 2천년이 넘는다. 본문은 크게 4토막으로 쪼개진다. 2-4절은 바사와 헬라 제국의 200년에 걸친 역사, 5-20절은 북방왕 프톨레미왕조와 남방왕 셀류키드왕조, 21-35절은 셀류키드 왕조의 8번째 왕인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에 대해서 긴 분량을 할애하면서 설명한다. 그는 역사 안에서 적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다. 36-45절은 한 왕을 상징적인 인물로 해서 적그리스도에 대해 집중적으로 다룬다.
바사의 고레스왕 이후 넷째 왕은 다리오의 아들 크세륵크세스다. 성경 에스더서에 나오는 아하수에로왕이다. 그는 4년간 준비해 헬라를 공격하나 살라미스 해전에서 패배하고 만다. 그 후 헬라와 바사는 100년 넘게 적대적 관계에 있다가 헬라의 알렉산더 대왕이 일어나 삽시간에 바사를 초토화시키고 인디아까지 정복해 거대제국을 이룩한다.
그러나 그가 절정의 시기인 32세에 요절하자 헬라제국은 급격히 약해져 나라가 소아시아, 헬라, 남방 애굽, 북방시리아 4개로 분열된다. 애굽은 프톨레미왕조, 시리아는 셀류쿠스 왕조가 전개된다. 셀류쿠스 1세 리카도르는 바벨론과 시리아, 메대까지 가장 큰 나라를 다스리게 된다. 이 나라들이 서로 전쟁을 하고, 승패에 따라 통치 관할지역이 바뀌고, 정략결혼을 하고, 왕들이 교체되는 과정들이 11장에 예언된다.
하나님은 놀랍게 이 모든 일이 일어나기 200-300년 전에 언약의 말씀으로 그 사건들을 기록해 놓고 있다. 이렇게 상세한 묵시문학을 구약의 다른 부분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또 이렇게 정확하게 다 알아맞힐 수는 없다. 어떤 학자는 11:2-35에 예언이 무려 135가지가 나오는데 정확히 400년의 역사 안에 그대로 맞아떨어졌다는 연구발표를 하기도 했다. 에피파네스, 클레오파트라 등 이름만 정확히 나오지 않을 뿐이지 구체적인 역사의 인물들과 놀랍도록 부합한다.
일반 역사와 성경 말씀 안에 나오는 역사를 비교해 보라. 성경이 그저 한 종교적인 세계와 영역을 다루고 내면에 이런저런 위로를 주는 책이 아니라 삶의 실재, 인류역사의 실존을 다루고 있는 진리의 말씀이라는 것을 믿는가? 성경이 이렇게까지 분명하게 우리 삶의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자리에 대해 말씀하실 줄 알고 말씀을 그렇게 읽고 받아야 한다. 많은 사람이 성경을 읽으면서도 현실적인 삶과 관계가 없는 것처럼 생각한다. 성경은 단11장을 통해 뭐라고 말하나? 말씀대로 역사 안에 다 이루어진 것처럼 앞으로 우리의 삶이 말씀대로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역사에서 셀류쿠스와 프톨레미만 본다. 심지어 언약백성들 중에서도 한번은 프톨레미에 붙었다가 한번은 셀류쿠스에 붙으면서 세상의 권력을 붙잡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누가 역사의 무대의 주인인가? 프톨레미나 셀류쿠스의 손에 의해 모든 역사가 움직여지는 것 같으나 그들은 어떤 면에서 연극 무대에 서 있는 배우들이고, 이면에서 대본을 쓰고 그들을 움직이는 참 주인은 오래 전에 그 모든 일을 작정하시고 기록해 놓으시고 이루시는 하나님이시다.
‘작정된 기한’이라는 말이 여러 번 반복된다. 하나님께서 역사와 모든 땅의 움직임들을 이끌어 가시도록 하나님의 기간과 시기와 방법이 작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미국, 중국 등 강대국의 손에 세계 역사가 떡처럼 주물러지는 것 같으나 하나님의 작정된 기간까지만 그 나라들이 힘을 쓰도록 허용되어 있다. 종말의 대환난이 아니더라도 이 땅을 살아가면서 삶에 고난이 다가올 때 꼭 알아야 할 것은 고난이 반복적으로 잇대어 있지 않고 작정된 기간만 허락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손 밖에서 일어나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다니엘서가 강조하는 것은 주님의 재림 전에 대환난이 있다는 것이다. 종말 때의 고난은 한 사악한 인물과 함께 온다. 11장에서 안티오쿠스 에피파네스라는 한 인물을 부각시킨 이유는 마지막 환난이 그와 유사구조를 갖기 때문이다. 적그리스도가 오면 모든 신과 종교를 부인하고 그 자리에 자기를 앉힌다. 그는 세계단일정부를 세우고 자기를 숭배하는 단일종교를 만들어 종교 정치 사회 문화적으로 온 세상을 지배한다.
적그리스도가 뿔 달리고 무시무시하게 생긴 게 아니다. 그는 사람들에게 매력적으로 어필한다. 그는 강력한 카리스마로 세상을 휘어잡아 모든 세상의 분쟁을 잠재우면서 처음에는 평화로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다. 그가 ‘여자의 사모하는 것을 돌아보지 않는다’는 말은 보편적 인간성, 감성, 애정, 인간관계 등을 거부하고 철저히 자기와의 이해관계에 의해 재배치한다는 말이다. ‘세력의 신을 섬긴다’는 말은 힘과 세력과 전쟁을 추구한다는 말이다.
서로 적대적이던 남방왕과 북방왕이 연합해 그를 치지만 전쟁에 능한 그를 이길 자는 아무도 없다. 그는 영화로운 땅에 들어가 성도들을 핍박한다. 종말의 때에 믿음을 끝까지 지키려면 큰 고난이 따른다. 누구든지 신앙을 부정하면 살길이 있고 형통한 길이 열린다. 수많은 사람이 배도할 것이며 적그리스도는 승승장구할 것이다.
삶에 고난이 올 때 고난을 면하기를 바라지 말고 그걸 통해서 대환난을 견딜 수 있는 주님의 더 강건한 용사가 되도록 능력을 길러야 한다. 주께서 고난의 용광로를 통과하게 하시면서 우리를 정금같이 빚어내시고 구원 받을 만한 믿음에 걸맞은 자로 연단해내신다. 고난 때 알아야 할 것은 그게 우리가 생각하는 그림의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성도가 믿음을 지키기 위해 받는 고난을 하나님이 보고 계시다가 때가 되면 천사장 미가엘을 보내셔서 생명책에 기록된 당신의 백성들을 구원하는 역사가 일어나고 적그리스도는 갑작스럽게 끝을 맞이한다.
세상을 살아갈 때는 이 땅에서 명성, 부, 권세, 능력, 인정받는 것 등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그게 가장 가치로운 것 같지만 그때가 되면 모든 것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오직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되어 있는 것만이 가장 중요한 것이 된다.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불못에 던지운다(계20장).
주님께 우리의 이름이 불리는 순간에 영화 ‘쉰들러 리스트’에서 이름이 불렸을 때의 기쁨과 비교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감격을 느끼게 될 것이다.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면서 경험한 기적들을 놀라워하면서 보고하자 주님께서는 그런 걸로 기뻐할 게 아니라 너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 것으로 기뻐하라고 말씀하셨다.
성경은 보화가 감추어진 밭을 발견했으면 모든 소유를 팔아 그 밭을 사라고 말씀한다. 구원이 최고로 중요하기 때문에 이 땅에서 자기의 가진 모든 것들로 그 구원을 견고하게 하고 구원을 확증하면서 살라는 말이다. 자녀양육, 공부, 직장생활 등 우리가 무엇을 하든 우리 자신이 어떤 사람으로 드러나기를 위해서 하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영광스러운 구원을 확증하기 위해서 그것들을 잘 해내야 하는 것이다. 그날에 우리의 이름을 부르실 그분을 조금도 실망시켜드리지 않는 것이 우리의 소망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이 주신 물질과 시간과 재능을 어떻게 쓰고 있나? 보화가 감추인 밭은 이미 가졌으니 그건 빼 놓고 이 땅의 수많은 밭을 사 놓고 싶은가? 예수님의 공로로 구원을 거저 받았기 때문에 어떻게 살든 구원은 따 놓은 당상이고 이제 세상에서 잘 되는 것만 남았다고 생각하나? 향방을 잃고 살면 안 된다. 우리의 가진 것으로 끝없이 보화가 감추인 밭을 사야 한다. 이 땅의 방식과 논리들을 다 내려놓고 예수 그리스도를 전심으로 붙들 때 우리의 이름이 생명책에 기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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